가방은 내려놓았는데 숙제는 좀처럼 시작하지 않는다. 물을 마시고, 연필을 찾고, 잠깐 쉬겠다고 한다. 부모는 시계를 보다가 결국 같은 말을 반복한다. ‘숙제부터 하자.’

이럴 때 아이가 미루고 있다는 사실만 보면 대화가 짧아진다. 해야 한다는 말과 나중에 하겠다는 말이 오간다. 오늘은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조금 잘게 나눠보면 어떨까.

무슨 숙제가 있는지 확인했는지, 필요한 책을 꺼냈는지, 첫 문제에서 무엇을 하라는지 아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다. 할 일을 정하지 못한 아이와 문제 뜻을 몰라 멈춘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은 다를 수 있다.

가령 수학 두 쪽과 받아쓰기 연습이 남아 있다면 ‘전부 끝내’라고 말하는 대신 무엇부터 할지 고르게 해볼 수 있다. 아이가 수학을 골랐다면 책을 펴고 첫 문제를 읽는 데까지만 함께한다. 그다음은 혼자 해볼 시간을 주자.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.

할 양을 눈앞에 보이게 하는 방법도 있다. 종이에 오늘 할 일을 두세 줄 적고 끝난 것을 지우는 식이다. 다만 목록을 만드는 시간이 또 다른 숙제가 될 만큼 복잡해질 필요는 없다. 예쁜 계획표보다 오늘 실제로 쓸 수 있는 짧은 메모가 낫겠다.

학교와 방과 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피곤할 수도 있다. 쉬는 시간을 정할 때도 ‘조금 있다가’보다는 간식을 먹고 책상에 앉기처럼 아이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잡아보자. 약속한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면 다음 날 조정하면 된다.

시작이 매번 어렵다면 ‘의지가 약하다’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. 어떤 날, 어떤 과제에서 유난히 오래 걸리는지 기록해두면 담임교사와 이야기할 때도 구체적인 질문이 생긴다.

오늘 숙제에서 부모가 맡을 일은 첫 장을 함께 펴는 것까지일 수 있다. 아이가 스스로 이어간 부분이 있다면, 끝낸 분량과 함께 그 시작도 알아봐 주면 좋겠다.